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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사람들이 학군지로 몰리는 이유인가?!

 

지금 시점에서 청소년기 학생 또는 직장인 및 사회구성원이라면 과연 스마트폰을 안 쓰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연로하신 분들이나 그것이 필요 없어도 삶을 즐길 수 있는 분이라면 굳이 필요하진 않겠지만. 소위 스마트폰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이것을 사용하는 유저라면 대명사격인 애플의 아이폰(iPhone)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한다.

 

애플이라는 기업은 이 기업의 창업자이자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로 인해 투자자 및 남녀노소 누구나 알고 있는 명사로 손꼽힐 것이다. 글에선 굳이 이 거대 기업의 역사 및 설명은 생략토록 하겠다. 필자의 가슴을 쓰라리게 만든 아이폰 시리즈는 아이폰 4이다. 아이폰이라는 제품이 출시된 건 20071월 경이다. 당시 1세대 아이폰은 전 세계적 센세이셔널을 일으켰지만 내 기억으론 국내에선 그 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 얼리어답터나 미국 생활을 경험한 분들이나 알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짚고 넘어갈 것이 하나 있다.

 

나의 고향은 예부터 노동집약적 기업으로 유명하다. 흔히 알고 있는 조선과 자동차로 대표되는 그 기업들의 본사 및 주요 공장이 이곳에 속해 있다. 하지만 알짜배기는 세계 거대 정유업체 및 그에 파생되는 다양한 석유화학단지가 이 도시의 주요 GDP 출처이다.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이 애플 아이폰이라는 거대 IT 산업의 탄생 및 발생에 대해 전-혀 무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위치와 함께 주요 손꼽히는 대표산업 등으로 인해 이러한 신산업 태동에 대해서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핑계는 이쯤 해두고 아무튼 태생적 한계(?)로 인해 대학생 반 이상을 국내 대기업 제품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부모님께 받은 핸드폰 선물이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였던(그 당시 최정상의 인기 연예인의 등용문이었다) 이효리가 광고모델로 나온 삼성 애니콜 시리즈였다. 아예 이 당시에는 연예인 이름이 붙은 이효리폰”, “전지현 폰”전지현폰” 등등으로 출시될 시기였으며 긴 시간을 폴더 형태의 전화기 모양에서 좀 더 간편하고 슬림한 슬라이드라는 혁신을 업은 형태의 전화기가 태동되는 시기였다. 이 때는 광고 나오기 전부터 광고가 나오는 사회적 최고의 핫이슈였다. 필자는 무엇에 꽂혔는지(아마 광고 모델 빨) 광고를 보자마자 내 대학생은 얘와 함께라는 다짐과 함께 부모님을 설득하여 기어이 소유하게 되었다. 어렴풋이 생각해 보면 그 당시 핸드폰 가격이 지금의 아이폰 가격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심각하게 고가이긴 했다. 이는 대학생인 필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사치품이기도 했다.

 

그림 1. 필자의 애니콜 사용 모델. SCH-B630. 텐밀리언 메가 셀러폰인 SCH-E250의 약간의 업글버전이나 껍데기만 바뀐 것뿐 큰 의미는 없었다.
그림 1. 필자의 애니콜 사용 모델. SCH-B630. 텐밀리언 메가 셀러폰인 SCH-E250의 약간의 업글버전이나 껍데기만 바뀐 것뿐 큰 의미는 없었다.

 

그림 2. 한국을 빛낸 텐밀리언셀러폰의 변천사
그림 2. 한국을 빛낸 텐밀리언셀러폰의 변천사

 

생각의 회로를 막아선, 아니 스스로 막아버린 언론 광고의 늪에 빠진 지난날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이슈가 있을 시절 미국에선 이미 스마트폰이 태동되고 있었다. 당시 슬림 슬라이드 핸드폰으로 가능한 기능이라곤 전화 및 문자, 음악재생, 사진, 그 외 각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기타 서비스가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애플의 아이폰은 기본적인 서비스뿐 아니라 당시에는 상상도 못 할 멀티 터치화면에 셀룰러 망 연결에 따른 웹 브라우징과 그에 따른 이메일 기능, 앱 스토어를 경유한 원하는 서비스를 직접 다운로드하여 사용하는 모바일 앱 설치 기능까지

기능까지 그야말로 자그마한 핸드폰에서 모든 것으로 할 수 있는 혁명이자 그 당시 아예 게임 체인저”라는 용어로 기술되며 전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초기 모델은 다소 투박한 느낌이 들었으나, 점점 여세를 몰아 소위 감성까지 더해지며 세계를 광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 시초가 아마 아이폰3 시리즈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결국 200911월에 국내에 출시하게 되며 시장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당시 기사를 보면 아이폰이 일주일 만에 KT 추산 6만 대의 예약판매를 올리는 등 기세가 어마 무시했다. 아이폰을 알고 그에 따른 추세를 기사를 찾아봐야만 알 수 있었지 그 당시에 매스미디어에서는 잠깐 유행처럼 지나갈 행태로 비췄었고, 그에 따라 나는 여전히 이러한 태동을 전혀 몰랐었다.

 

당시 이러한 산업 지각 변동에 대응하고자 애니콜로 국내 통신업계 시장을 장악하던 삼성전자에서 맞불로 내놓은 신규 모델인 “옴니아 2”로 호기롭게 가히 비교까지 하며 언론의 힘까지 빌려 애플의 아이폰과 비교 우위를 논했었다.

 

그림 3. 무려 제목이!! 옴니아랑 애플을 비교하다니!!!
그림 3. 무려 제목이!!

 

그 당시 매스미디어에 절여진 내 상식과 정보로는 도저히 왜? 물 건너온 미국 제품을 사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물론 심각하기론 옴니아 2마저 불필요한 상품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더 큰 문제 아닌 문제였었다. 그리고 대사건이 20106월 WWDC에서 터지고 만다여기서 WWDC는 애플사가 매년 6월 캘리포니아에서 개최하는 대규모 개발자 회의이다.

 

이미 성공적인 아이폰 1세대 프레젠테이션에 매료된 개발자 회의 당사자들 및 전 세계 사람들은 당시 애플의 수장이자 CEO인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에 온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본인이 직접적으로 핫 하다고 했었고(잡스 왈, Now, this is really hot) 당시 새로운 디자인 protype 마저 직원의 유출(이것은 단순 실수 인가 고차원적인 마케팅 전략인가?)로 기대감은 이미 폭발 중이었다. 프레젠테이션에선 이를 재치 있는 유머로 청중들의 큰 웃음까지 자아낸다. 풀 영상은 유튜브 링크를 통해 소개해드리니 향수에 젖으신 분들이나 아직 접해보지 못한 분들은 프레젠테이션의 바이블이라고 하는 스티브 잡스의 명연설을 확인 해보길 바란다.

링크: (1) 전설의 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 2 - 애플의 철학을 보여주는 2010 아이폰 4 공개 중요 부분 요약 [자체 한글자막] - YouTube (개인채널 유투버이신 거 같은데 한글자막까지 입혀주셔서 감사의 말씀 전해드린다.)

 

그림 4. 스티브잡스의 대명사인 패션과 함께 소개되는 아이폰 4
그림 4. 스티브잡스의 대명사인 패션과 함께 소개되는 아이폰 4

 

그림 5. 가장 혁신적인 모델이라 평가받는 아이폰 4 공개당시 모습. 전 세계에 스마트폰 시대를 여는 전설의 시작이다.
그림 5. 가장 혁신적인 모델이라 평가받는 아이폰4 공개당시 모습. 전 세계에 스마트폰 시대를 여는 전설의 시작이다.

 

이때는 신문, TV 등의 미디어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는 아이폰 4였고 국내 출시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 시기로 기억된다. 필자는 KT 통신사를 통해 201011월경쯤 80번대 대기번호를 통해 예약대기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폰4는 내 인생 첫 스마트폰이다. 이후 잠깐의 외도를 거쳐(시중에 핫한 전화기는 다 써보자는 취지에서 삼성 갤럭시 3시리즈, LG G3 스크린 등을 경험해 보았다.) 계속 소위 애플 빠로서 소신을 지키고 있다.

 

편견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흔히 알고 흔한 향수에 젖은 이야기다. 그러나 필자는 주식을 시작하여 주식을 하는 입장에선 이 시기는 영원히 고통받을 시기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한 2010년 시기는 IT 산업의 초전성기로의 진입 시기이기도 했지만 국내에선 소위 ‘차, 화, 정’(자동차, 석유화학, 정유)의 전성기 시대였다. 그 수혜주가 모두 있는 도시에 살았기에 그 체감을 누구보다 잘 알며 주식 = 패가망신’이라는 신조가 깔린 우리 집 분위기도 이에 편승하는 분위기로 기억된다. 이로 인해 자연스레 필자는 2010년이 인생 첫 스마트폰 소유 기이자 주식이라는 놈을 처음 알게 된 시기이기도 하다. 그 당시 나이가 20대 중반이었다. 물론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게 뭐든 아는 만큼 보인다고 주식을 처음 접한 나에겐 그저 아 자동차, 화학, 정유 산업이 핫하고 이러한 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주식을 사게 되면 돈을 벌 수 있겠구나 정도의 소위 ‘주린이’의 인식이었다. 그러나 약삭빠른 주변 대학 동기들이나 선배들은 국내 핫 주식뿐 아니라 아이폰으로 대두되는 애플 사의 외국 주식에도 서서히 이야기 중심 화제가 되고 있을 시기였다. 그러나, 주린이의 귀에는 애플? 해외주식? 이거 쫄딱 망하겠는데?라는 기적의 3단 논법으로 철저히 무시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렇다면 당시 핫한 주식의 지금까지의 동향을 파악해 보기로 해보자(속이 쓰리다 못해 배가 아파 뒤집힐 지경이지만)

 

이미 버스는 저 멀리 떠나버렸다. 다시 탈 버스를 기다리며!

 

그림 6. 2010년 11월 당시 애플 주가 - $10.95
그림 6. 2010년 11월 당시 애플 주가 - $10.95

 

그림 7. 2010년 당시 환율. 대략 1030원대 정도다.
그림 7. 2010년 당시 환율. 대략 1030원대 정도다.

 

그림 6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폰4가 출시 후 필자가 주식에 대해 처음 접할 당시 가격이 11달러 정도 된다. (다시 보니 2008년 약 3달러 정도로 저점을 찍고 아이폰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는 것을 볼 수 있다.) 애플은 지금까지 총 5번의 주식분할을 진행하였고 그중 아이폰 4 출시 후 20147:1, 20204:1 분할을 감안하면 그 당시 주가는 대략 $306 ~ 307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화(그 당시 환율 약 1030. 그림 7 참조)로 치면 대략 31 ~ 32만 원 정도다. 물론 그 당시 물가 및 대학생임을 고려하면 주식 1주를 사기에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 국내 핫한 차화정의 대표 격인 현대차, SK이노베이션 주가 역시 크게 저렴한 건 아니었다.

 

그림 8. 2010년 11월 당시 현대차 주가 - 18만 8천원
그림 8. 2010년 11월 당시 현대차 주가 - 18만 8천원

 

그림 9. 2010년 11월 당시 SK이노베이션 주가 - 16만 732원
그림 9. 2010년 11월 당시 SK이노베이션 주가 - 16만 732원

 

문제는 현대차 및 SK 이노베이션의 경우 그 당시 주가와 현 주가 간 별다른 차이가 없다. 심지어 현대차는 주가가 하락했다. 무려 12년 동안이나 주가는 아무런 상승이 없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애플의 경우 당시 대비 무려 약 13.5배나 상승했다.

 

물론 무려 12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지금 시점에서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분석이기에 과거의 일을 조명하는 건 누구나 다 하고 그때 이랬으면 이랬을 텐 데와 같은 무의미한 일인 것은 누구보다 잘 안다. 당시 대학생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재테크 아닌 재테크를 한답시고 한두 푼 아껴 모은 돈을 차곡차곡 모아 은행 이자를 위해 성심성의껏 갖다 바쳤으나, 다른 시각을 가지고 더 크게 바라봤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에 넋두리를 해보았다. 또한, 지금 사용하는 아이폰을 수차례 보며 다시는 애플과 같은 후회스러움을 만들지 않기 위해 시각을 넓게 보고 차기의 애플에 투자하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계속 정진이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 성투 하시 길 기원하며 이만 마친다.

 

P.S: 아이폰 프레젠테이션 당시 스티브 잡스의 패션 또한 큰 관심거리였는데 그 당시 신었던 뉴발란스 992 모델 또한 1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로 남아있으나 다행히도 상장회사는 아니었다. 당시 뉴발란스도 나이키 못지않게 무진장 신었던 기억이…. 사람은 유명하고 볼일이다.

 

(투자 전문가가 아니며 특정 주식의 매도 매수 추천도 아님을 서두에 밝힙니다. 투자에 대한 책임은 투자 본인에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