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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초 다우니가 토니 스타크라는 인물을 설정하는데 머스크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언론에서 밝힌 바 있다. 첨단 산업에 대해 배경지식이 크지 않은 영화배우의 눈에서도 불가능에 도전하는 열정과 아우라를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일론의 사업사를 살펴보면 시대를 넘어 대중이 열광할 수 있는 안목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포털사이트의 어쩌면 시초일 ZIP2부터 핀 테크의 시초 페이팔, 우주산업의 새 지평인 스페이스 X 및 전기로 움직이는 슈퍼카 테슬라까지 책에서 소개한 창업 스토리부터 발전과정, 거기에 묻어 나오는 위기대응 능력을 이번 2편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자신의 아이디어에 사로잡혀 온몸을 불사르고 한순간도 낭비하지 않는 유형의 인물인 일론 머스크는 ‘아이언맨’의 영화 주인공 스타크와 같다”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 -

 

1. ZIP2 모험의 시작 – 열정만 가득한 초보 기업 창업자

1995, 머스크가 인터넷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먼저 감지한 것은 그의 인턴 시절로 당시 옐로 페이지소속의 세일즈맨이 인터넷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업성을 끌어낼지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업종별 상호 목록을 보완하는 용도로 온라인 목록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보고 동생인 킴벌과 함께 사업 구상에 착수한다. 최초의 회사명은 글로벌 링크 인포메이션 네트워크(Global Link Information Network)로 웹을 서핑하는 대중에게 사업체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음식점, 옷 가게, 미용실 주인들에게 납득시키겠다는 게 사업의 취지였다. 인터넷으로 검색 가능한 사업체 목록과 함께 지도를 결합하여 해당 업체의 위치와 쉽게 가능 방법으로 지금의 포털사이트의 기능이 함축된 부분을 무려 1995년에 머스크는 생각해 낸 것이다!

 

당시 머스크는 엔지니어로서 코딩 작업, 킴벌은 세일즈 리더가 되어 회사를 운영하였으며 그 당시 직원이었던 제프 페일만이 말하길 일론은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코딩 작업에만 몰입할 정도로 직원들이 출근해서 자는 자신을 발로 차서 깨우라고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고 한다.

 

열정 가득한 신생 기업은 1년 만에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벤처 투자 회사인 데이비도우 벤처스(Mohr Davidow Ventures)는 이들이 하는 사업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3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다. 당시 머스크 형제는 1만 달러를 투자하면 회사 지분의 25%를 주겠다고 하는 것으로 봐선 사업에 대한 열정만 있었을 뿐 회사를 운영하는 자금 및 투자에 대해선 잘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일론에게 독이 된 이벤트가 되었다. 이때부터 일론 머스크가 투자의 중요성 및 본인의 사업의 투자가들에게 의구심 및 적대심을 키운 계기가 되었지 않았을까?

 

이 자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링크 인포메이션 네트워크에서 ZIP2로 공식적인 회사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당시 주로 엔지니어로 활동하던 일론에게 투자가들은 CEO(오디오 장비 제조사에서 활약한 리치 소킨을 영입) 대신 최고 기술 경영자 자리를 요청하며 그의 ZIP2에서의 통제권을 낮춰 버렸다.

 

소킨의 지휘 아래 잘 나가던 회사는 19984월 당시 거래가치가 3억 달러에 이르는 경쟁사(시티서치(CitySearch))와의 합병을 발표했다. 두 회사가 같은 비중으로 합병하는 것으로 비쳤으나, 으레 당연하듯 역할이 겹치는 부분에 대해선 도려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수한 잡음과 함께 한 달 뒤인 5월에 합병이 취소되었고 이는 언론의 먹잇감이 되었다. 당시 머스크는 이사진에게 본인을 CEO로 복직을 요청했으나 되려 이사회 의장 자리까지 잃게 되었다.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19992 PC 제작사인 컴팩(Compaq) 컴퓨터가 ZIP23700만 달러에 매입하게 되었고 일론은 2,200만 달러와 함께 파란만장한 첫 창업기가 끝나게 되었다.

 

ZIP2를 통해 일론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웹을 시작하며 대중의 생각과 기술 트렌드를 읽는 데 타고난 능력을 보였으며 인터넷의 영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 목표를 세우고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하여 기업 시장에 초첨을 맞춘 사이트, 지도, 디렉터리 등 웹의 중심이 되는 초기 기술을 실현했다. 그러나 학창 시절에서도 팀을 이끌어본 적 없는 인간관계에 미숙한 일론에게는 팀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대해 깊이 생각한 과정이었으며 실패 아닌 실패를 통해 그는 다시 다음 작업에 힘차게 착수하게 된다.

 

2. 실리콘밸리의 주역, 페이팔 마피아

ZIP2 매각으로 백만장자가 된 일론은 인터넷으로 문제 해결이 가능한 산업 분야를 물색했고 그것은 은행으로 결론 내렸다. 학창 시절 무턱대고 찾아간 노바 스코티아 은행에서의 인턴 시절 미국 브레디 채권(Brady bonds)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으나 다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만 하는 수동적인 은행가들이 부유한 동시에 어리석다는 깨달음을 통해 이를 이용하면 대단한 기회를 잡으리라 생각해 낸 것이다. 1995ZIP2 사업 구상을 하던 그 시기에 아이디어를 가지고 1999ZIP2가 매각된 지 한 달 뒤 지인 3명과 중개서비스와 보험은 물론 저축예금 계좌와 당좌예금 계좌 등 온라인 금융 서비스를 포괄적으로 제공하는 금융 신생 기업 엑스 닷컴(X.com)을 설립했다.

 

돈보다는 기업을 창업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관심이 많은 머스크는 거액을 투자한 덕택에 최대 주주가 되었다. 특히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프리커는 엑스 닷컴에 필요한 은행업 역학에 대한 지식을 공급하는 등 초반에는 막역한 사이로 잘 지냈다.

인터넷 은행에 대한 규제의 장벽에 큰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언론에다가 은행업 전체 사업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계속 사변적 발언을 흘리는 것이 엑스 닷컴을 발판으로 은행업계의 거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자 했던 프릭커와의 계속된 언쟁이 결정적 원인이 되어 그들은 5개월 만에 또 다른 회사를 창업을 위해 떠나고 일론은 새로이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절치부심한 일론은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마련하고 은행 영업 허가 취득을 발판으로 엑스 닷컴을 은행 계좌를 보좌해 주는 FDIC(미국 연방 예금보험공사) 보험과 투자자가 선택할 수 있는 세 종류의 뮤추얼 펀드를 갖춘 세계 최초의 온라인 은행으로 만들었다. 이때가 199911월이다. 여기에 추가로 일론의 지시에 따라 몇 가지 혁신적인 뱅킹 개념을 시도했다. 서비스를 신청한 고객에게 20달러 현금카드를, 다른 고객을 소개할 때마다 10달러 현금카드를 주었다. 사소한 수수료와 과다 인출 수수료를 없앴으며 이메일 주소를 사이트에 연결하여 타인에게 송금할 수 있는 지명 결제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 방식은 최근 우후죽순 생겨난 카카오 뱅크 및 토스 등 국내 인터넷 은행 판촉과 동일한 방식이다. 무려 23년 전에 일론은 이 마케팅 전법을 기획 및 실현한 것이다!) 이 방식으로 서비스 가동 2개월 만에 가입자가 20만 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사업 방식에 돈 냄새를 맡은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났다. 맥스 레브 친(Max Levchin)과 피터 티엘(Peter Thiel) 역시 신생기업 콘피티니(Confinity)를 창업하고 고유의 결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었고 곧 지금의 페이팔이라는 이름으로 엑스 닷컴과 동일한 방식의 서비스를 시작했던 것이다. 두 기업은 규모와 속도가 사업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을 알고 사용자를 확보하기 위한 열띤 경쟁을 벌였다. 수천만 달러가 광고비로 소요되고 해커들의 장난질을 피하기 위해 보안프로그램을 개발하느라 또 수백만 달러가 추가로 투입되어야 했다.

 

그러던 20003, 두 기업에 중대한 사건이 펼쳐지게 된다. 경쟁에 의한 소모를 줄이고자 두 기업이 합병하기로 합의했다. 엑스닷컴이 많은 현금 보유와 정교한 은행 상품을 보유한 이유로 합병에 주도적 역할을 맡으면서 일론이 합병 기업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합병에 성공하자 재정 후원자들에 1억 달러를 투자 유치하고 고객 수가 100만 명이 넘어서는 등 사업이 확장되는 듯했다. 그러나, ZIP2 사례에서도 보듯 비슷한 두 기업의 합병 속 행복한 동행은 오래가지 못했다. 엔지니어들은 본인의 프라이드가 굉장히 강하고 쓰던 코드를 친숙해하며 쓰게 마련인데 이게 터지고야 말았다. 레브친의 콘피니티 측은 리눅스(Linux) 같은 오픈소스(소스 코드가 공개된 상태로 공급) 소프트웨어를 원했고 일론은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를 지지하면서 민감한 부분에서 대립이 발생하였고 결국 또다시 공동 창업자 격인 피터티엘과 레브친이 사업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같은 회사에서 두 번째로 일론은 분열된 회사를 떠맡게 되었다.

 

그림 1. 페이팔에서의 피터 티엘과 일론 머스크. 사진에서의 우호협력적인 관계는 고작 2 달만에 막을 내렸다
그림 1. 페이팔에서의 피터 티엘과 일론 머스크. 사진에서의 우호협력적인 관계는 고작 2 달만에 막을 내렸다

 

첫 사례와는 다르게 거대하진 회사 내 직원들을 유연하게 다룰 스킬이 머스크에겐 부족했다. 결국 한밤 중 사내 직원들이 모두 모여 일론의 불신임 서류를 비밀리에 이사회에 타진하기로 결정하여 신혼여행으로 자리를 비운 일론을 CEO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역사상 끔찍한 쿠데타 사건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일부 충성파 직원들이 일론에 알렸고 그는 즉시 회사로 돌아와 이사회에 항의하였으나 이사회의 결정은 확고하였다. 회사 고문으로 강등당한 그는 투자를 멈추지 않고 최대 주주로 입지를 굳혔으나 머스크의 영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20027월 이베이가 페이팔을 인수를 끝으로 약 25,000천만 달러를 남긴 채 그의 인터넷 은행의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 일론은 언론에서 독선적인 완고한 괴짜로 조롱당하고 심지어 페이팔의 공동 설립자 자격에 의문 섞인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일론에게 쏟아진 더욱 맹렬한 비난은 자질을 갖추기 전에 크게 성공하며 CEO 로서 자질이 부족했음을 여론이 거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인터넷 뱅킹은 표준 금융 도구를 온라인에 도입하고 여러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여 은행 산업을 현대화하였고 인터넷 결제와 뱅킹 관련 신생 기업 탄생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가 세운 마케팅, 기술, 금융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로 페이팔은 911 이후 최초 대형 주식상장가가 되었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 당시 닷컴 버블이 무너지는 와중에 기술 기업으로 이베이에 천문학적인 가격을 받고 매각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책이 쓰인 2014년에 이미 사용자가 15,300만에 가치는 320억 달러였다.)

 

추가로 아마 페이팔 하면 가장 유명한 문구 중 하나가 제목에서도 씐 페이팔 마피아’가 아닌가 한다. 페이팔 출신 엔지니어들이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거대 기술회사 창업자를 많이 배출한 뜻 에어다. 이는 일론의 타고난 안목이 한몫한 결과이다. 팔란티어의 창업자이자 페이스북 초대 투자자 피터 티엘, 링크드 인의 리드 호프만, 유튜브의 스티브 첸 등이 있으며 머스크는 그중 가장 유명하고 성공한 구성원의 하나로 불린다.

 

3. 로켓에 미친 사람들 – 스페이스 X의 도전기

스페이스 X는 페이팔 매각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일론의 전 재산을 투자한 우주 산업 회사이자 상업용 로켓을 궤도로 올려놓는 데 성공시킨 최초의 민간회사로 톰 뮬러(Tom Mueller) 등과 함께 20026월 설립되었다. 책에 소개된 4개 회사 중 유일하게 비상장 회사이기도 하다.

 

그의 초기 사업 구상 안은 생쥐와 식물을 지구 궤도가 아닌 화성으로 보내는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로 시작되었으나 로켓 발사 비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대륙 간 탄도미사일 사들여 발사용으로 쓸 생각으로 200110월을 시작으로 4개월에 세 차례 러시아를 방문한 후로 명확한 사업 방향을 가지게 된다.

 

당시 러시아 관계자로부터 경멸을 받은 일론은 20022월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로켓의 가상 성능과 함께 조립하고 발사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비용과 함께 소형 위성과 연구 탑재물을 타깃으로 하는 아담한 크기의 로켓을 만들어 비용을 절감하자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게 된다. 같이 동행한 항공 우주 석학들도 깜짝 놀랄 만한 문서였다고 한다. 어린 시절 독서량과 함께 수개월간 항공 산업과 그와 연관된 물리학의 독학의 결과였다!

 

스페이스 X의 목표는 명확했다. 소형 탑재물을 운송하기에 이상적인 로켓을 만들어 비용을 대폭 낮추고 일정에 맞추어 규칙적으로 발사할 능력을 갖춘다면 상업용과 연구용 화물을 우주로 운송하는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림 2. 톰 뮬러(맨 오른쪽 회색 셔츠). 스페이스 X의 멀린 엔진을 설계하고 시험하고 구축하는 작업을 이끈 초창기 멤버
그림 2. 톰 뮬러(맨 오른쪽 회색 셔츠). 스페이스 X의 멀린 엔진을 설계하고 시험하고 구축하는 작업을 이끈 초창기 멤버

 

이 때문에 애초에 엔진은 자체 제작, 기타 부품은 하청을 통해 조달받을 계획을 세웠으나 엔진 성능을 개선하고 제조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조립 과정을 조정해 로켓을 기존보다 싸고 신속하게 생산해 내기 위해 부품 전량을 미국 내에서 자체 제조하는 방식으로 바꿔버렸다. 이는 어떠한 경쟁업체에서도 하지 못한 사항으로 주로 해외에 있는 하청 업체의 의존도를 없애는 등 제조업에 대한 일론의 확고한 신념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일론은 스페이스 X에서도 뛰어난 인재를 선별하는데 앞장섰다. 최상위권 대학의 항공 우주학과에 직접 연락해 최고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을 소개받아 직접 일자리를 제안하여 인원을 뽑기도 했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창업할 거 아니라면 명문대에서 뛰어난 성적을 가지는 것도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그림 3. 스페이스 X 의 첫 비행 장소인 마셸제도의 콰잘린 섬
그림 3. 스페이스 X 의 첫 비행 장소인 마셸제도의 콰잘린 섬

 

그림 4. 스페이스 X 의 이동형 우주 비행 관제 센터 모습. 여기서 머스크와 뮬러는 콰절린 섬에서 실시한 발사체를 모니터링 했다.
그림 4. 스페이스 X 의 이동형 우주 비행 관제 센터 모습. 여기서 머스크와 뮬러는 콰절린 섬에서 실시한 발사체를 모니터링 했다.

 

스페이스 X는 민간 기업으로 최초 달성한 사례가 많다. 200894차례 시도 끝에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로켓을 궤도에 진입시킨 사례를 시작으로 201012월에는 팰컨 9호가 드래건 캡슐을 우주로 운송 및 임무 완수 후 바다에 착수한 캡슐을 안전하게 회수할 수 있음을 입증하였으며 20125월에는 비상장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국제 우주정거장에 도킹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숱한 최초 사례로 인해 NASA에게서 수억에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 및 관련 사업 계약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으로 많은 우주산업 종사자의 가슴을 설레게 한 점은 덤이다. 일론은 이러한 역경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데 탁월한 듯하다. 저비용 고효율 로켓 발사를 차례로 성공했다면 일론은 다음 단계로 로켓 탑재물을 우주로 쏘아 보내고 역추력 기를 사용해 로켓을 연착륙시켜 재사용하려는 계획이다. (책의 타임라인 상 여기까지는 다뤄지지 않았고 팔콘 9호의 해상 회수는 4번의 실패 끝에 201648일 성공했다)

 

스페이스 X의 이러한 위대한 도전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있는데 이는 그윈 숏웰(Gwynne Shortwell, 스페이스 X 사장이자 최고 운영 책임자)이 아닌가 한다. 불 같은 성격의 일론과 외부인과의 갈등 중재 등 매일 일어나는 문제를 처리해 일론이 회사 전반적인 전략 및 제품 설계, 마케팅 등에 집중할 수 있게 배려하며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업무에 집중과 함께 회사 명분에 집중하는 참모이자 기계 공학도 임에도 탁월한 세일즈 실적으로 회사가 어려울 때마다 적재적소에 계약을 수주할 수 있게 한 장본인이다. 외부에선 그녀가 없었으면 스페이스 X는 불가능했을 거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앞선 사업과는 다르게 스페이스 X에서는 인재의 덕을 보게 된 일론이다.

 

그림 5. 스페이스 X 의 실질적인 살림꾼 그윈 숏웰
그림 5. 스페이스 X 의 실질적인 살림꾼 그윈 숏웰

 

 

 4. 전기로만 움직이는 슈퍼카 - 테슬라

테슬라는 사실 순수한 의미에서는 일론 머스크가 창업한 회사는 아니다. 테슬라는 마틴 에버하드(Martin Eberhard)와 마크 타페닝(Marc Tarpenning), 이안 라이트(Ian Wright)에 의해 연 매출 30억 달러인 미국 고급차 시장을 겨냥하기 위해 20037월 설립된 회사로 회사명인 테슬라는 전기모터 제작의 선구자이자 발명가인 니콜라 테슬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다.

 

이들의 회사에 일론은 초기 650만 달러를 투자하면서 테슬라의 최대 주주이자 회장이 된 것이다. 이후 일론은 리튬 이온 배터리 기술을 가지고 그와 일찌감치 뜻을 함께한 J.B 스트라우벨(J.B.Straiubel)을 추가 합류시키게 되면서 테슬라의 시초가 완성되었다. 리튬 이온 배터리 수백 개를 병렬로 연결하는 시도로 이 기술 분야에서 선두가 되었다.

 

그림 6. 자택에서 테슬라 초기 배터리 팩을 조립하는 스트라우벨
그림 6. 자택에서 테슬라 초기 배터리 팩을 조립하는 스트라우벨

 

테슬라 초기 모델인 로드스터AC 프로펄전의 티제로 동력계와 영국 제조사 로터스의 차체로 시작되어 배터리에 불이 붙었을 때 벌어지는 현상을 통해 확보한 경쟁 우위를 가진 배터리 기술(경쟁사 대비 수년간의 기술 경쟁 우위를 확보)과 탄소섬유의 차체 및 실용성을 더했다.

 

그림 7. 테슬라의 첫 로드스터 제작 모습
그림 7. 테슬라의 첫 로드스터 제작 모습

 

초기 로드스터의 절찬리 성황으로 은행 계좌에 한때 5,000만 달러 가량 존재할 때도 있던 테슬라에 역시나 위기가 찾아왔다. 유독 테슬라 사업에는 예전부터 갈등 요소가 엄청 많다. 마치 지금처럼

 

그림 8. 머스크와 마틴 에버하드가 초기 로드스터를 시범 주행하는 모습
그림 8. 머스크와 마틴 에버하드가 초기 로드스터를 시범 주행하는 모습

 

로드스터 제작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제조 비용(실제 20만 달러, 계획 85,000달러), 변속기, 비효율적인 공급 업체 등이 발견되었고 이로 인해 제 날짜에 자동차를 인도하지 못하자 거액의 선금을 냈던 소비자들에게 비난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제조 비용에서 어마어마한 차이를 알게 된 후 결국 창업자 마틴 에버하드는 이로 인한 책임이 전가되어 CEO에서 경질되어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

 

이후부터 테슬라 CEO로 임명된 자들은 회사 경영이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진 자들이었다.. 에버하드 직후 CEO로 임명된 마이클 막스는 테슬라의 자산 가치를 높여 대형 자동차 제조사에 매각이 목적이었으며 막스 다음 CEO인 지브 드로리는 이사회의 꼭두각시였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더욱 악화되는 상황이었다.

 

테슬라 초기사업에선 2008년 연말 파산 직전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일이 가장 유명한 이벤트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로드스터의 턱없이 높은 개발비와 불황을 맞아 최악의 금융 위기 속에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은 까닭에 사업비가 아예 바닥나며 언론에선 파산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에게 손을 벌리고 심지어 직원들 다수가 모금까지 해야 할 정도였다. 이때 일론은 스페이스 X로 대출받아 테슬라에 투입했고 자신이 보유한 솔라시티 주식의 일부를 팔아 충당하기도 했다. 결국 사촌이 설립한 하고 자신이 투자한 데이터센터 소프트웨어 전문 신생 기업인 에버드림(Everdream)을 델이 인수하면서 약 1,500만 달러를 조달하였고, 테슬라를 파산시키려 한 투자사 밴티지포인트와의 갈등에서 일론의 위기관리 능력으로 인해 파산하기 불과 몇 시간 전인 크리스마스이브에 극적으로 회사를 살릴 수 있었다.

 

엄청난 사건 뒤 2012년 중반 테슬라는 모델 S로 현실에 안주하는 소위 레거시 자동차 산업을 뒤흔들었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형이 변하지 않은 이 순수 전기차는 초기 모델은 7인승 세단(가족이 많은 일론에 의해 가족용 차량이라는 인식을 담기 위해)에 제로백이 4.2, 한번 충전으로 480km 이상 달릴 수 있는 차로 연료당 주행거리, 조작, 수납 면적 등에서 대부분의 경쟁 세단을 압도하였고 배터리 팩이 차체 무게중심에 가까이 배치하여 운전 성능과 기능, 안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출시되자마자 얼리어답터들에게 트렌드가 되었고 모터 트렌드 및 컨슈머 리포트 등에서 찬사를 받았다. 출시 1년 만에 분기 수입이 무려 56,200만 달러에 이르렀다.

 

그림 9. 초창기 모델 S. 지금과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그림 9. 초창기 모델 S. 지금과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모델 S의 외관 디자인 작업에서도 문제는 발생했다. 에스턴 마틴 등 최고급 자동차 디자이너인 헨리크 피스커를 채용하여 모델 S 외관 디자인을 맡겼으나 가장 좋은 디자인을 감추고 본인이 직접 창업 때 쓰려고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에서 비하인드도 나오는데 첫 번째로는 테슬라의 원래 계획은 하이브리드 자동차 제작이었다. 그러나 하이브리드를 생산하면 타협 점이 커지게 되어 과한 제조 비용과 성능에서 순수 전기차만큼 확보하기 힘들었다고 스트라우벨은 증언한다. 본연의 신념에 집중하여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한다. 두 번째로는 모델 S의 시제품 및 디자인 초안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CLS였으며 이를 폭스바겐의 전설의 뉴 비틀디자이너인 본 홀츠하우젠이 다듬어 모델 S를 테슬라의 상징적 제품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벤츠와 폭스바겐의 감성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그림 10. 모델 S 설계자 프란츠 본 홀츠하우젠. 사진 속 사무실은 일론의 스페이스 X 사무실로 둘은 거의 매일 대화했다고 한다.
그림 10. 모델 S 설계자 프란츠 본 홀츠하우젠. 사진 속 사무실은 일론의 스페이스 X 사무실로 둘은 거의 매일 대화했다고 한다.

 

엇보다 백미는 차체 내 17인치 터치스크린이 아닐까 한다. 애플의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몇 해 전에 만들어진 제품이다. 아이폰과 그 터치 기능을 사용해 본 후 이러한 유형의 기술이 곧 보편화되리라고 확인한 일론의 아이디어 덕분이다.

 

테슬라의 난관 중 마지막은 소비자 수천 명에게 공급할 공장과 자금부족 충당이었다. 사업 담당 부사장인 오코넬과 일론이 함께 정부로부터 세금 공제와 리베이트를 위해 노력했다. 주로 내연기관의 거물들과의 거래를 통해 해결책을 찾았다.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모델 S 시제품 자동차에 다임러 중역들에 관심을 끌어 테슬라 지분 10% 및 전략적 제휴 관계를 바탕으로 미 연방 에너지국 관리들에게 확실한 어필이 되었고 결국 20101월 에너지국과 약 46,500만 달러 규모의 차관 협정을 통해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공장 부지 확보는 운이 많이 작용하였다. 당시 GM과 도요타의 합병으로 실리콘밸리 외곽 도시 프리몬트에 누미(New United Motor Manufacturing Inc., NUMMI)를 설립하였으나 경제 불황으로 GM은 파산 위기에서 헤어 나오고자 2009년 공장을 버리기로 결정했고 도요타도 공장 폐쇄를 통해 5,000명의 근로자가 졸지에 실직하게 되었는데 테슬라가 도요타와의 업무 제휴와 공장 이전을 발표하며 공장 이전에 4,200만 달러를 지불하며 도요타는 테슬라 지분 2.5%를 확보했다. 실질적으로 테슬라는 대형 유압 프레스와 기타 도구를 포함하여 누미 공장을 사실상 공짜로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림 11.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있는 자동차 공장에서 직원들이 모델 S 를 생산하고 있다.
그림 11.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있는 자동차 공장에서 직원들이 모델 S 를 생산하고 있다.

 

2010년 여름에 공장 인수 계약을 마무리하고 많은 자본이 필요함에 따라 테슬라는 주식 상장 절차를 밟게 되었는데 이는 포드가 1956년 주식을 상장한 이래로 미국 자동차 제조사로는 처음 있었던 일이었다.

 

이처럼 일론의 행보에는 무모한 도전이자 최초, 고난과 역경 끝에 결국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고자 하는 불굴의 의지와 특유의 자신감이 있었다. 물론 모델 S의 판매고가 저조한 시기인 2013년에는 친구이자 구글 CEO인 래리 페이지에게 테슬라를 매각하기로 구두 합의하기도 했지만. (책에서 나오지 않지만 이후 일론은 팀 쿡의 애플에게도 제안을 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책에서의 제11장은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모델 X 생산, 기가팩토리, 태양열 에너지를 다루는 솔라시티를 테슬라가 인수한 배경, 모델 3 대량생산을 목적으로 배터리 팩을 다루는 기가 팩토리까지. 테슬라 및 일론, 스페이스 X 등 워낙 팬덤이 많아 책 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이가 많은 점과 지면에서의 한계로 인해 과거의 일과 위기 순간만을 서평으로 다뤄보았다.

 

그러한 이유 중 하나로 최근 일론의 행보와 테슬라 주가의 영향도 큰 몫을 차지했다. 일론은 책 후반부 에필로그에서도 나오지만 테슬라도 스페이스 X의 그윈 숏웰처럼 그를 보좌해 줄 CEO 또는 COO 영입에 관해 예전부터 툭툭 던지고 있었으며 최근 트위터 인수로 인해 이러한 부분이 또다시 점화되고 있다. 또한 테슬라 주식 매도와 신뢰의 문제까지. 하나 이러한 부분은 책 속에서도 알 수 있듯 일론 그 자체의 성향이다. 그가 하는 사업 어느 하나 죽게 두지 않고 밤을 새워서까지 극한의 고통 속에 내몰면서까지 지키려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트위터가 워낙 엉망이다 보니 트위터를 정상으로 돌리고자 숨 돌릴 수 없다는 점과 2008년 테슬라 사례에서 보듯 자금난에 빠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선 그가 보유하고 있는 다른 회사 주식을 팔아서라도 살리려고 애쓰는 모습은 올해의 사태가 처음은 아녔음을 알게 되었다. 현시점의 테슬라는 이제 기반이 탄탄하게 잡혀 그가 하루하루 다 돌보지 않아도 된다는 어쩌면 자신감의 반영이지 않을까 한다. 그에 정반대 되는 주가는 난센스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현재 일론은 그가 하는 사업 외에 다시 돌고 돌아 트위터를 통해 인터넷 서비스 산업의 정상화에 뛰어들었다. ZIP2와 페이팔 사례에서 보듯 그는 또다시 10년 앞을 내다보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트위터를 통해 찾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남겨본다. 상장폐지를 통해서까지 그가 추구하는 어떤 다른 사업의 변화점이 있을까 생각이 되며 어떻게 변화하여 기존 그의 사업과 시너지를 낼지도 계속 지켜보는 재미(?)도 있지 않나 한다. 마지막으로 스페이스 X 전 직원에게 직원들의 주식상장 요구에 따른 일론의 이메일 내용을 끝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원문 전체는 책 부록 3에 수록되어 있다.

 


주식 상장 때문에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작아진다면 화성 탐사 계획이 궤도에 올라설 때까지 주식을 상장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다시 생각해 볼 의사는 있지만 테슬라와 솔라시티에서 겪은 경험을 참고하고 특히 스페이스 엑스의 사명이 장기적 성격을 띤다는 점을 고려해 주식 상장을 더더욱 주저하고 있습니다.

 

상장기업에서 일해본 적이 없는 직원은 주식 상장이 바람직한 절차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술이 급변하거나 내부 사정으로, 때로는 아무 원인 없이 순전히 경제 문제로 상장 기업의 주가는 극심하게 요동합니다. 그러면 직원들은 훌륭한 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하지 못하고 주가 변동에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테슬라와 솔라시티는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어서 주식을 상장했다는 사실을 강조해야겠습니다. 두 기업의 개인 자본 구조를 통제하기 힘들었고 자본금을 많이 늘려야 했습니다.


자신이 공개시장의 투자가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스페이스 엑스의 주식을 적당한 시기에 팔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대부분의 헤지 펀드 관리자보다 낫다면 자신이 보유한 스페이스 엑스의 주식 가치에 신경 쓸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다른 상장 기업의 주식에 투자해 주식시장에서 수십 억 달러를 벌면 되지 않습니까?


실제로 경제적 측면에서 스페이스 엑스의 1분기 결과는 형편없었습니다. 스페이스 엑스가 상장 기업이었다면 공매도 세력에게 호되게 당했을 것입니다.


예정보다 1 이상 발사가 지연되는 V1.1 발사가 자꾸 늦어지면 특히 심한 비난이 따를 것입니다. 발사를 뒤로 미루는 사소한 결정을 내려도 뭇매를 맞기 마련입니다. 작년에 테슬라 차량의 출시가 예정보다 3 늦어졌을 때가 시장의 반응은 혹독했습니다.


스페이스 엑스의 주식이나 옵션에 대해 여러분에게 할 수 있는 권고 사항을 적어보겠습니다. 복잡하게 분석하지 않아도 경험으로 미루어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페이스 엑스가 보통 상장회사보다 실적이 좋아서 주가가 주식시장에서 평가하는 것보다 계속 높으리라고 믿는다면 장기적으로 돈을 투자해 고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단기와 중기로 본인의 생활수준을 향상하는 데 필요한 양만 주식을 파십시오. 인생은 짧은 데다가 현금을 손에 쥐면 사는 재미도 늘어나고 가정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줄어들기 때문입니다(개인 소비를 특정 방향으로 불균형하게 늘리지 않는다면 말입니다.)